앞선 글들에서 소득(income)을 액티브 인컴(active income)과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고 적었다. 공무원이었던 아빠와 교수였던 엄마를 제외하고도 우리 집안 윗세대들은 모두 active income을 기반으로 가계를 꾸려나갔던 사람들이었다. 사실, 우리 집안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대다수는 회사에 고용되어 노동력을 판 댓가로 active income을 받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active income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디지털 노마드란?
이러한 패시브 인컴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것이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새로운 업무 형태이다. '디지털'은 우리가 잘 아는,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의미이고 '노마드(nomad)'는 '유목민'을 뜻한다. 구글에 디지털 노마드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바닷가의 해변이나 해먹 위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게 아마 '디지털 노마드'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 이미지가 아닐 듯 싶다. 기존의 업무 형태가 자신이 고용된 회사의 사무실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뜻한다면, 디지털 노마드는 사무실이라는 물리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일을 하는 업무 형태를 뜻한다. 위 구글 검색 이미지에서 언뜻 보이는 위키피디아의 설명엔 디지털 노마드가 일하는 주요 공간으로 "외국, 커피샵,, 도서관, 협업 공간(공유 오피스), 또는 레저 차량"을 꼽은 걸 볼 수 있다. 노트북 등을 가지고 마치 유목민처럼 공간의 제약 없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즉, 구글 검색이 가장 먼저 보여주는 디지털 노마드의 대표 이미지에 포함되는 '해변가'와 '노트북'은 그 사람의 유연한 유동성(mobility)을 대변하는 환경과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 왜 부상하는 걸까?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이 부상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산업 구조 변동으로 대변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다. 문명은 기술적으로 무언가 비약적인 발전이 있을 때 마다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러한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환기(transitional period)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대에 사람들이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정의할진 모르지만, 현재 우리는 조심스럽게나마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아직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여서 정확히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시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 생활에 새롭게 추가되는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사용이 가능해지고, 기존의 모든 것들에 '스마트'가 붙어서 출시되는 경향은 확실히 눈에 띈다(스마트 워치, 스마트 스피커, etc).
이러한 산업 구조의 변경은 인간의 이동(mobility)과 거주 행태와도 큰 연관이 있다. 아주 옛날, 석기시대 원시인들의 주요 경제 활동은 수렵 및 채집 (hunting and gathering) 활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야생 동물들이 있는 곳을 찾아, 더 많은 식물들이 자라는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다 약 12,000년전 쯤 농업혁명이 발생했다. 즉, 이제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더 이상 수렵 및 채집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주요 경제 활동이 바뀌면서 삶의 행태 조차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정착하여 농경지를 가꾸며 살게 되었다.
인간 문명은 아주 오랜 시간 농경 사회 기반이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들어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엔 기계들이 만들어지면서 기존에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하던 물품들이 공장이라는 일터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공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도시화(urbanization)의 시작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심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시와 그 인근의 마을들은 점점 규모가 커져나갔다.
한때 수렵과 채집을 주요 경제 활동으로 삼았던 인류는 정해진 정착지 없이 돌아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농업이 개발되자, 정착하여 땅을 일구며 살게 된다. 평생 아주 오랜기간 농사를 기반으로 살아왔는데, 어느덧 산업혁명이 발생한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인간의 주요 거주 행태가 바뀌게 된다. 이번엔 농촌에서 도심으로 이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직 뭐라 불러야할지 모르는 지금 현재의 변화는 그냥 편하게 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겠다. 지금 현재의 상황은 산업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면에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와 아주 비슷하다. 기존에 정석 트리로 받아들여졌던 경제 활동 방식이 있다면, 지금은 새로운 무언가로 바뀌고 있는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환기(transitional period)에는 필연적으로 수 많은 사회적, 경제적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산업 구조 변경으로 인해 기존에 최고로 쳐줬던 직종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더 이상 최고가 아니게 되어있고, 직장을 잃는 다던가 더 이상 자신이 가진 기술로는 새롭게 부상하는 직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감은 정치적으로도 발산이 되는데, 2000~2010년대에 들어 전세계 선진국에서 기승을 부린 포퓰리즘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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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AI나 고급 기계 기술등의 발전으로 인해 단순 노동직이 많이 줄어들었다. 반면에, 이로 인해 혜택을 받는 직종들도 있다. "Internet of Things (IoT)". 인터넷은 사람들이 더 이상 물리적으로 한 공간(예: 사무실)에 모여있지 않아도 업무의 진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노트북에 스마트폰, wifi에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더 이상 모여서 일하지 않아도 업무가 충분히 가능한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인간 역사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코로나사태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원격 근무, 재택 근무 또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근무 형태는 아직 조금씩 늘어날 뿐 절대 현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코로나가 앞당겼다. 직접적으로 만나는 in-person의 경우가 줄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일이 생기면서 집에서 원격근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늘어났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무래도 원격 근무 소프트웨어 등의 사용에 익숙하면서 기존에도 어느정도 원격 근무가 지원되었던 IT 업계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다.
<관련기사>
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3/2020051300499.html
news.joins.com/article/23843639
www.etoday.co.kr/news/view/1969530
디지털 노마드가 부상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앞서 세대에 관한 글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짧게 다루었는데,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arion)는 대체적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정도에 태어난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한 세대이면서, 이전 그 어떤 세대들보다 학력이 높으나 연이은 경제 위기로 인해 평균 소득은 가장 낮은 세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도 미루면서 내 집 마련에도 적극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것 외에, 디지털 노마드의 부상과 이들이 연관 있는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의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적인 성향 때문이다.
탈물질주의(postmaterlism)라는 단어는 1977년에 출판된 미국 정치학자 Ronald Inglehart의 "The Silent Revolution"이라는 책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책에서 주로 설명한 것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전쟁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때문에 그 이전 세대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후 세대(post-war generation)는 물질적 안보(material security)에 대한 걱정이 없으며 반면에 비물질적 목표(non-material goals)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물질적 목표란 자기 표현, 자율성, 언론의 자유, 양성 평등, 환경보호 등을 포함한다 (출처).
밀레니얼 세대 또한 탈물질주의 성향을 띈 세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부족함을 갖고 살았던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게 더 많은 연봉, 더 큰 집, 더 비싼 자동차 보다 더 좋은 삶의 질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회사의 부품이 되어 사회에 맞춰 생활해야하는 직장인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업무 행태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상당수는 IT 업계에 있다.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들은 이미 원격근무에 필요한 각종 소프트워에 등을 다루는데 굉장히 익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정 직종 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생각해보자. 개발자라는 직종은 항상 부족하다. 보통 이렇게 공급이 부족한 경우엔, 개발자들을 구하고자 하는 수요 측면들에선 이들에게 각종 매력 어필을 하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어필들 중 하나가 원격근무 형태를 지원하는 것이 된 측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 세계에서 원격 근무, 원격 수업까지 자행되는 와중에 이러한 프로세스가 더 앞당겨졌다. 이제는 모두가 Zoom을 통해 화상회의를 할 수 있고, 각종 공유 프로그램과 클라우드 앱 등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더 많은 직종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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